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따라
유월절을 온전히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유월절은 아무날에나 아무렇게 지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꼐서 정해주신 날짜에 규례에 맞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밖에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금 알려드릴께요^^
유월절은 하나님의 유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자 창조주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2000년전에 사람되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때 이름은 예수님이시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유월절을 세워주시고, 유언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유언 // 유월절**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오래도록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가 부모님이라면 더욱 뼈저리다.
부모님의 유언은 불효한 청개구리조차 따르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부모님의 마지막 부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는 한이 있어도 들어주고 싶다.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마땅한 것이었다.
어쩌면, 하나님을 모독한 거짓 선지자의 최후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보여준 과시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에게는 실패한 인생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로마인들에게는 흉악범의 최후, 혹은 많은 유대인 중 그저 한 사람의 최후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구원의 완성이었다.
인류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고결한 선물이었다.
**사형과 운명**
재판이 마치자마자 즉시 사형이 집행되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십자가형의 첫 번째 수순이었다.
로마 군병들이 휘두르는 채찍에는 쇳조각이나 동물의 뼛조각이 달려 있었는데,
죄수가 창상을 입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창상을 입어 출혈을 함으로써 십자가상에서 빨리 죽음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채찍질의 고통이 결코 약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오는 것은 물론, 때로는 뼈가 드러나거나 내장이 쏟아져나올
만큼의 깊은 상처를 입혔다.
군병들은 채찍질로 예수님의 온몸을 난도질한 후,
가시로 만든 관을 머리에 씌우고 왕들이 입는 홍포를 입히고 손에 갈대를 들게 했다.
그리고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희롱했다.
어떤 이는 예수님께 침을 뱉고 어떤 이는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영적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하나님을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은 군병들과 유대인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해골)라 불리는 언덕으로 끌려가셨다.
십자가에 못박기 전, 예수님께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마취제였지만 예수님은 사양하셨다.
본격적인 십자가형이 시작됐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고정시킨 후
굵고 긴 못을 예수님의 양손과 발에 사정없이 내리쳤다.
금요일 오전 아홉 시경의 일이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죄패가 붙어 있었고, 양편에는 두 강도가 나란히 십자가형을 당하고 있었다.
십자가형은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형벌이다.
사형수들은 십자가에 달린 채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한다.
못이 관통한 손과 발에서는 자연히 심한 출혈이 뒤따른다.
때로는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양손이 찢어지기도 한다.
출혈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심한 두통과 고열을 동반한다.
자연히 땀이 나면서 탈수증세가 찾아온다.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햇볕은 사형수의 고통을 극대화시킨다.
숨쉬는 것조차 힘겹다.
축 늘어진 몸을 가다듬어 한 줌의 숨을 들이마시려면 다리에 힘이 가해지기 마련이다.
순간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온다.
이 일은 숨이 붙어 있는 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복된다.
사형수들은 이렇게 창상, 출혈, 두통, 고열, 탈진, 배고픔, 갈증, 한기 등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혼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서서히 극한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만물조차 그 참혹한 현장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일까.
정오쯤 되자 해가 빛을 잃고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어둠은 세 시간 동안 지속됐다.
오후 세 시경,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했다.
예수님의 운명을 암시했다.
유대인들은 빨리 사형수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수습해달라고 재촉했다.
다리를 꺾는 이유는 숨을 쉬기 위해 본능적으로 다리를
지탱하며 안간힘을 쓰는 사형수들이 빨리 숨을 멎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안락사였다.
로마 군병들은 두 강도의 다리를 꺾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상태였기 때문에
로마 군병 롱기누스는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
또 다른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었다
(출애굽기 12:46, 고린도전서 5:7, 요한복음 19:32~37).
**유월절과 유언**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희생당하시며 하셨던 일곱 마디, 이른바 가상칠언 중 하나다.
도대체 무엇을 이루었다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셨던 것일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신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음식을 먹는 자리였다.
그날 저녁 하셨던 말씀이 유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은 무교절의 첫날, 유월절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특별한 심부름을 시키셨다.
유월절 만찬을 먹을 객실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마가의 소유로 전해지는 큰 다락방이 준비되었고 저녁이 되어 열두 제자와 함께 자리하셨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3년에 걸쳐 완성한 벽화 ‘최후의 만찬’은
이 일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께서는 떡을 들어 축복 기도를 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어 축복 기도를 하시고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하신 말씀에 대한 약속 이행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성력 1월 14일 유월절이 되면 모세의 율법대로
일 년 된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를 불에 구워 먹었다.
그러나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의 살과 피에 참예하도록 새 율법을 세워주셨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그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며 보혈을 흘리신 희생의 결정체가 바로 유월절인 것이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16~2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받기 전, 죄 사함과 영생이 약속된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키시며 유언을 남기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희생하심으로 효력을 발생시켰다.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이루신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새 언약 유월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신비 그리고 위대하신
사랑과 희생이 담겨 있다.
아버지 하나님의 유언은 자녀들에게 있어 사무치도록 뼈저린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유언으로
하나님의교회는 유월절을 지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교회는 유월절을 가지고 오신
안상홍님을 재림그리스도로 믿습니다.
이천년전 구원주시려 새언약유월절을 세워주신 초림예수님
답글삭제그러나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음으로 행했습니다
지금도 그러실건가요?
구원주시기 위해 새언약유월절을 회복하여 주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을
어리석음으로 행할건가요? 이제는 성경의 교훈을 삼아 지혜로움으로 안상홍하나님을
영접해야겠습니다^^
너무나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운명하시건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답글삭제우리의 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사형을 당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런 우리의 크나큰 죄를 대신하시어 그토록 처절하게 고통당하시고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여 그 희생의 댓가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새언약유월절을 자녀들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아버지의 뜻을 거역한다면 결코 죄 사함도 구원의 축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아버지...그 희생의 길은 얼마나 참혹하고 고통스러우셨을까요.....
답글삭제그저 예언을 이루시고저...자녀를 위한 희생의길 묵묵히 걸어가시는 그 뒷모습에...그저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리옵니다.
아버지, 당신을 실로 하나님이시나이다...
십자가의 고통...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럽습니다.
답글삭제어찌 견디셨습니까...아버지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그 죄를 대신하여 죽기까지 희생하신 하나님...
유언은 자녀들이 그 유지를 받들어 지킵니다.
새언약 유월절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유언을 받들어 지키는 자이며 구원받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